영어 독학하는 법

지난 4년 동안 영어를 독학하면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종합해서 외국에 가지 않고 한국에서 영어 배우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개인에 맞게 최적화하기(personal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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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배울 때는 자기만의 커리큘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언어를 배우는 원리는 보편적으로 누구에게나 적용됩니다(원리의 보편성). 여러분의 뇌와 저의 뇌는 언어를 배울 때 같은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하지만 개개인에게 가장 효과적인 학습방법의 조합은 사람마다 다릅니다(방법의 개별성). 제가 영어를 배우는 방법 그대로 여러분이 영어를 배웠을 때 제가 얻은 결과보다 더 안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고,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첫 외국어를 배울 때는 목표 언어(target language)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최적화된 외국어 학습법의 조합을 찾아야 합니다. 

 

 

외국어 학습&습득의 3요소는 방법, 재료, 태도입니다. 

 

1. 방법

방법은 크게 확장과 강화로 나뉩니다.

 

확장

학습은 직접적이고 의도적으로 언어를 배우는 행위입니다. 학습을 통해 지식을 직관적이고 빠르게 배울 수 있기 때문에 확장에 용이합니다. 논리와 이성에 많이 의지하고 감각에 대한 의존도가 떨어지는 부분들을 채우는데 효과적입니다. 학습의 예는 사전 검색, 문법 설명 읽거나 듣기, 수업 참여, 원어민에게 단어 뜻 물어보기 등이 있습니다. 

 

강화

배운 지식들이 체화되지 않으면 감각적으로 사용하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배운 것을 반복하면서 체화시켜야만 합니다. 이 과정이 강화입니다. 배운 것을 반복하게 되면 관련 뉴런 개수가 증가하고 시냅스 연결이 강화됩니다. 이렇게 뇌가 변하면 그 전보다 훨씬 좋은 퍼포먼스를 수행하게 됩니다. 이 과정이 체화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반복입니다. 걷기, 자전거 타기, 수영하기를 할 때 우리는 체화된 동작을 통해 상황에 맞게 움직입니다. 강화의 예는 영어 원서 읽기, 유튜브, 영화, 드라마 시청하기, 팟캐스트 듣기, 오디오북 듣기, 영어 일기 쓰기, 원어민과 대화하기 등입니다.

 

 

2. 소재 

방법이 아무리 좋아도 적절한 소재를 선택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소재를 고를 때 고려할 점은 흥미와 난이도입니다. 이 두 가지를 전부 충족시키는 소재가 최적의 소재입니다. 또한 자신이 영어를 배우는 목적에 따라 전략적으로 범위를 제한하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흥미

흥미가 난이도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라고 하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전문가들이나 다개국어 구사자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첫째, 외국어 학습은 장거리 마라톤과 같습니다. 재미없는 것을 억지로 장기간 지속하려고 하면 중간에 그만둘 가능성이 높습니다. 

둘째, 재미없거나 즐겁지 않은 것을 억지로 하면 뇌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스트레스가 적은 환경에서 언어 습득 효율이 가장 높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과학적 사실입니다. 지루하고, 자기와 관련 없는 것은 뇌가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CNN 뉴스가 영어 공부에 좋다고 해서 여러분에게는 재미가 없는데도 CNN 뉴스로 영어를 배우거나, 프렌즈로 영어를 배우면 좋다고 해서 남들은 그렇게 재미있다는 프렌즈가 여러분에게는 정작 재미가 없는데 프렌즈로 영어를 배우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닙니다. 

 

난이도

흥미만큼 중요한 요소는 난이도입니다. 스티븐 크라센 박사는 i+1의 콘텐츠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합니다. i+1은 쉽게 말해서 본인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보다 아주 약간 어려운 난이도를 말합니다. i+1 난이도의 콘텐츠를 스무고개 퀴즈로 비유하면 힌트 스무 개가 전부 공개된 퀴즈입니다. 모르는 내용이 1~2% 정도 섞여 있는 소재가 적당합니다.

예) 문장 전체의 내용을 거의 다 이해했는데 괄호 속의 단어만 모르는 경우: "흥미만큼 중요한 (   )는 난이도입니다."

 

범위

영어를 배울 때는 자신에게 긴급한 것, 자기 삶과 관련 깊은 것, 관심이 많이 가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령 우리가 아주 어릴 때 내뱉었던 말들, '엄마', '배고파', '졸려', '싫어', '장난감 사줘' 같은 말들은 모두 그 당시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치열한 것들이었습니다. 영어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주제나 대상이 우리에게 절실한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삶과 동떨어진 것을 배우는 것은 비효율적일 뿐 아니라 거의 쓸모도 없습니다. 

 

영화, 드라마, 소설이 여러 장르로 나뉘듯이 영어도 여러 장르로 나눌 수 있습니다. 생활 영어, 여행용 영어, 특정 분야의 전문가에게 필요한 영어, 시사 영어, 소설에 주로 나오는 영어, 법정 드라마에 주로 나오는 영어 등등이 있습니다. 동일한 장르에 나오는 표현과 단어는 겹치는 경우가 많고 장르가 다르면 겹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만약 다음 달부터 3년 동안 미국 텍사스 주에서 살아야 한다면 집 구할 때 필요한 영어, 공항에서 필요한 영어, 이웃들에게 인사하는 법, 각종 세금과 관련된 단어들, 식당에서 주문하는 법부터 배워야 합니다. 미스터리 스릴러나 하이틴 로맨스 장르의 영드를 보면서 쉐도잉을 하고, 거기 나오는 단어를 암기하는 것은 출제 범위를 벗어난 내용을 공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반면, 가까운 미래에 영어권 국가에서 살 계획이 없고, 자신이 주로 소비하는 영어 콘텐츠가 왕좌의 게임 같은 중세 판타지 장르라면 해당 장르의 영화와 책을 주로 보고 읽으면서 거기 나오는 단어도 외우고, 표현들부터 익히면 됩니다. 예를 들면 마구간, 연회, 대관식, 가마, 왕실, 전하, 영주 같은 단어들 말입니다.

 

 

3. 태도

 

외국어 학습은 장기전이라는 것을 확실히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외국어 학습은 몇 달 단위가 아니라 최소한 몇 년 단위의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만약, 원어민 레벨에 준하는 실력을 원한다면 밥 먹고 영어만 배워도 10년 이상 걸릴 수 있습니다. 성인용 책을 사전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읽고, 어떤 영화나 드라마도 자막 없이 자유롭게 시청하고, 깊고 심오한 내용까지도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원어민 레벨입니다. 대부분의 어휘를 적절하게 사용하고 문법적 실수를 거의 하지 않는 것은 기본입니다. 

 

언어를 배우는 마법이나 비밀, 혁신적인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막대한 양의 시간입니다. 특히 초급 딱지를 떼고 중급 정도의 레벨에 안착한 후로는 실력 향상이 굉장히 더디게 체감됩니다. 저도 이 구간을 경험했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습니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지속하는 것이 고급자가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과정이 즐거워야 오래 지속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언어는 도구이기 때문에 이 도구를 사용해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 책이 될 수도 있고, 영화나 노래, 혹은 친구를 사귀는 일이 될 수도 있겠죠. 외국어를 배울 때는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지보다 과정을 얼마나 의미 있고 즐겁게 만들지 늘 고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화관에 가서 영화 엔딩 크레디트가 언제 올라오는지만 기다리며 영화를 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매 장면 장면이 주는 재미와 감동을 느끼기 위해서 영화관에 가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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